총균쇠를 다시 펼친 게 시작이었다. 한 7~8년 전쯤 처음 읽었을 때는 솔직히 중반부터 눈이 미끄러졌는데, 재독하니까 완전히 다른 책 같더라. 그래서 그 기세로 사피엔스까지 다시 꺼냈다. 600페이지짜리 벽돌책을 두 번이나 읽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상하게 읽을 때마다 밑줄 치는 위치가 달라진다. 이번에 사피엔스를 다시 읽으면서 가장 오래 붙잡고 있었던 문장이 하나 있다. “우리는 뻔뻔스럽게도 스스로에게 ‘호모 사피엔스’란 이름을 붙였다.” 슬기로운 사람이라니. 그 이름값을 했는지는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꽤 복잡한 기분이 된다.
별볼일 없던 유인원이 형제를 죽이기까지
사피엔스 1부 인지혁명의 핵심은, 우리 조상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돌연변이 하나가 판을 바꿨다는 이야기다.
학교에서 배운 인류 진화 도식이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시작해서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까지 일직선으로 쭉 올라가는 그림. 근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게 얼마나 단순한 이해였는지 깨달았다. 실제로는 같은 시대에 여러 인류 종이 동시에 살고 있었다. 유럽에 네안데르탈인이, 동남아시아에 호모 솔로엔시스가, 동아프리카에 우리 조상 호모 사피엔스가. 이걸 처음 읽었을 때 좀 멍했다. 우리가 유일한 인간이 된 건 “진화의 정점”이라서가 아니라, 나머지를 전부 밀어냈기 때문이라는 거다.
하라리는 그 무기가 ‘인지혁명’이었다고 말한다. 약 7만 년 전, 사피엔스의 뇌에 뭔가가 바뀌었다. 허구를 상상하고 그걸 언어로 공유하는 능력. 사자 이야기를 넘어서 “우리 부족의 수호신은 사자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 이게 왜 중요하냐면, 이 능력 하나로 150명 이상의 집단이 협력할 수 있게 됐다. 네안데르탈인은 물리적으로 더 강했을 수 있지만, 수백 명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건 못 했다.
기린 이야기가 떠오른다. 기린이 노력해서 목을 늘린 게 아니라, 우연히 목이 긴 돌연변이가 태어났고 그 개체가 더 잘 살아남았을 뿐이라는 거. 사피엔스도 마찬가지 아닐까. 지능적 돌연변이가 우연히 출현했고, 그 유전자가 생존에 유리해서 퍼져나간 것. 결국 생물의 역사라는 건 돌연변이의 역사이기도 하다. 예전에 읽었던 패턴시커라는 책에서 “자폐증 치료가 정말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졌었는데, 거기서도 같은 맥락이었다. 인류 발전에 돌연변이가 필수적이면서도 우리는 그걸 ‘결함’으로만 보려 한다. 묘하게 찜찜한 딜레마다.
밀이 인간을 길들인 이야기
2부 농업혁명은 읽는 내내 좀 불편했다. 학교에서 “인류 최대의 진보”라고 배웠던 농업혁명을 하라리는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불러버린다. 처음에는 과장 아닌가 싶었는데,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수렵채집인들은 주당 35~45시간 정도만 일했다고 한다. 사흘에 한 번 사냥 나가고, 채집은 하루 3~6시간. 나머지는 쉬거나 이야기하거나 놀았다. 근데 농업으로 전환하면서? 노동 시간은 오히려 늘었다. 밀밭을 갈고, 물을 대고, 잡초를 뽑고, 수확하고. 잉여 식량이 생기니 인구가 폭발했고, 그 잉여는 대부분 엘리트가 가져갔다. 농부 본인에게 돌아온 건 “겨우 연명할 것”뿐이었다.
인간이 밀을 길들인 게 아니라, 밀이 인간을 길들였다. 땀 흘려 자기를 키우게 만든 것이다.
이 대목을 읽을 때 문득 요즘 직장 생활이 겹쳐 보였다. “더 열심히 일하면 나아질 거야”라는 말. 1만 2천 년 전 농부들도 똑같은 기대를 품고 허리를 굽혔을 거다. 사치품이 필수품이 되고, 필수품이 새로운 의무를 낳는다는 하라리의 말은 스마트폰 시대에도 정확히 들어맞는다. 편해지려고 만든 도구에 오히려 묶여 사는 느낌. 이메일을 보내는 데 30초면 되지만, 그래서 하루에 처리해야 할 양이 10배가 됐다. 편해진 게 맞는 건지, 가끔 좀 답답하다.
돈과 제국, 그리고 상상이 현실이 되는 구조
3부 인류의 통합에서 하라리가 꺼내는 이야기는 결국 하나다 — 인간은 허구를 믿는 능력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것.
돈이라는 게 대표적이다. 종이 한 장에 불과한 지폐를 왜 모두가 가치 있다고 믿는가. 국가라는 개념도, 인권이라는 개념도, 따지고 보면 전부 상상의 산물이다. 하라리는 이걸 “상상의 질서”라고 부른다. 처음 이 부분을 읽었을 때는 좀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의 기반이 사실은 공유된 환상이라니.
근데 재독하면서 관점이 좀 달라졌다. 허구를 믿는 능력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게 있어야 수만 명이 협력할 수 있고, 문명이 굴러간다. 다만 문제는 그 허구의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지 않는다는 거다. 잉여 식량을 가져간 엘리트처럼, 상상의 질서를 설계한 쪽이 늘 유리한 자리를 차지해왔다. 이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아 근데 이건 좀 다른 얘긴데, 3부에서 제국주의를 다루는 부분은 재독하면서 좀 불편했다. 하라리가 제국의 긍정적 측면을 “객관적으로” 다룬다고 하지만, 읽다 보면 미묘하게 수정주의적 시각이 느껴진다. “영국 덕분에 인도에 철도가 깔렸다”는 식의 논리는, 솔직히 일제강점기를 정당화하는 논리와 구조가 같다. 이 부분에서 이 책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특히 요즘 청소년 필독서로 많이 읽힌다는데, 비판적 독서 없이 흡수하면 좀 아찔하다.
무지를 인정한 순간, 폭주가 시작됐다
4부 과학혁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과학혁명은 무지의 혁명이다”라는 한 문장이었다. 그 전까지 인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종교가 그 답이었고, 전통이 그 답이었다. 근데 약 500년 전, “우리는 모른다”를 인정하는 순간이 왔다. 그 인정이 관찰과 실험으로 이어졌고, 과학이라는 이름의 엔진이 돌기 시작했다.
여기에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결합했다. 탐험은 새로운 정보와 부를 가져왔고, 자본은 그 발견에 투자했으며, 과학은 더 강력한 기술을 만들어냈다. 이 세 바퀴가 서로를 굴리는 구조. 하라리가 짚는 핵심은 인간이 ‘신용’이라는 개념을 발명한 지점이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가치를 돈으로 인정하는 것. 이건 다시 생각해도 대단한 상상력이다. 동시에 꽤 위험한 도박이기도 하고.
재독하면서 밑줄을 새로 그은 부분이 있다. “과학자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니라 기술적 문제에 불과하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냥 흘겼던 문장인데, 이번에는 좀 오래 멈춰 있었다. 생명공학이 결국 ‘길가메시 프로젝트’로 향하고 있다는 하라리의 예측. 죽음을 없애려는 시도. 인간이 신이 되려는 것. 호모 사피엔스가 호모 데우스로 넘어가는 경계에 우리가 서 있다는 이야기다. 그 말을 읽고 나서 잠깐 책을 덮고 멍하니 창밖을 봤다. 이건 SF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게 좀 으스스하더라.
그래서 우리는 더 행복해졌는가
사피엔스가 끝까지 던지는 질문은 결국 이거다 — 힘은 커졌는데, 행복은 따라왔는가.
복권에 당첨되면 행복해진다. 하지만 약 1년 반이 지나면 일상적 행복은 원래 수준으로 돌아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돈이 의미 있는 건 가난에서 벗어날 때까지뿐이고, 그 이후로는 행복 수준이 거의 변하지 않는다. 하라리는 이걸 두고 “인간은 새로운 힘을 얻는 데는 극단적으로 유능하지만, 이 힘을 더 큰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매우 미숙하다”고 말한다.
이게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장 오래 남는 감각이다. 살인자에서 출발해, 농부가 되고, 제국을 세우고, 과학을 일으키고, 이제 신이 되려 하는 종. 근데 그 여정 내내 행복은 별로 늘지 않았다는 것. 개인적으로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 발전이 곧 진보라는 단순한 등식 말이다. 당신이 사피엔스를 아직 안 읽었다면, 총균쇠를 먼저 읽고 이어서 펼쳐보길 권한다. 두 책을 연달아 읽으면 인류를 보는 눈의 해상도가 확 달라진다. 600페이지가 부담될 수 있지만, 읽고 나면 분명 세상을 보는 각도가 하나 더 생긴다.
자주 묻는 질문(FAQ) ❓
사피엔스는 어떤 사람이 읽으면 좋은 책인가요?
역사, 인류학, 철학 중 어느 하나라도 관심이 있다면 일단 잡아볼 만하다. 다만 학술서는 아니고 대중 교양서에 가깝기 때문에, 깊이보다는 넓이를 보는 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처음 읽을 때 중반부가 좀 늘어지는 느낌이 있을 수 있는데, 4부 과학혁명부터 다시 속도가 붙으니 거기까지는 버텨보길 권한다.
총균쇠와 사피엔스, 어떤 순서로 읽는 게 나은가요?
총균쇠를 먼저 읽고 사피엔스로 넘어가는 게 확실히 낫다. 총균쇠가 “왜 대륙마다 발전 속도가 달랐는가”를 다룬다면, 사피엔스는 “인류라는 종 자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를 다룬다. 총균쇠로 지리적·환경적 맥락을 깔고 들어가면 사피엔스의 논지가 훨씬 입체적으로 들어온다. 두 권 다 읽고 나면 세계사를 보는 프레임이 꽤 달라지는 걸 체감했다.
사피엔스에 대한 학계의 비판도 있나요?
꽤 있다. 특히 네안데르탈인 멸종을 사피엔스의 학살로 단정 짓는 부분이나, 인지혁명이 사피엔스에게만 일어났다는 주장에 대해 인류학자들의 반론이 존재한다. 2022년 사이언스 어드밴스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두 종이 1만 년 이상 공존했다는 증거도 나왔다. 좋은 책이지만, 저자의 주장을 전부 사실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비판적으로 읽는 게 맞다.
사피엔스를 읽고 나서 이어서 읽을 만한 책이 있나요?
하라리의 후속작 호모 데우스가 자연스러운 다음 스텝이다. 사피엔스가 “인류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라면, 호모 데우스는 “그래서 앞으로 어디로 가는가”를 다룬다. 사피엔스 마지막 장에서 던진 “신이 되려는 인간”이라는 화두를 본격적으로 파고드는 책이라, 사피엔스에 감명받았다면 거의 필연적으로 손이 간다.
책을 덮고 나서 남은 것
사피엔스를 두 번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이 책의 진짜 가치가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것”에 있다는 거다. 우리는 정말 진보했는가. 행복해졌는가. 이 힘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완벽한 책은 아니다. 근거가 부족한 부분도 있고, 시각이 편향된 대목도 있다. 그래도 한 번쯤은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비판적으로 읽되, 질문만큼은 진지하게 가져가면 된다. 지금 이 사피엔스 리뷰를 읽고 흥미가 생겼다면, 직접 펼쳐보길 권한다. 600페이지가 생각보다 빨리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