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전기 서평 – 월터 아이작슨이 그린 비범한 인간의 민낯

몇 달 전 일론 머스크와 빌 게이츠 관련 책을 연달아 읽고 나니, 한 사람이 자꾸 떠올랐다. 스티브 잡스. 이름은 늘 알고 있었지만, 정작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 전기는 한 번도 펼쳐본 적이 없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눈에 띈 그 묵직한 벽돌 같은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두께에 살짝 주눅이 들긴 했다. 그런데 읽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

이 책이 다른 위인전과 다른 지점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 전기는 미화가 거의 없다. 잡스 본인이 승인한 유일한 공식 전기인데도, 읽다 보면 “이걸 본인이 허락했다고?” 싶은 대목이 수두룩하다.

보통 위인전이라고 하면 업적 중심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성공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독자가 감동받도록 설계된 구조. 근데 이 책은 그런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2011년 민음사에서 초판이 나왔고, 안진환 번역으로 925페이지 분량이다. 아이작슨은 CNN 전 CEO이자 타임지 전 편집장으로, 아인슈타인과 벤저민 프랭클린의 전기도 쓴 사람이다. 잡스가 직접 그를 지목해서 집필을 의뢰했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다.

인터넷에 떠도는 잡스 관련 글 대부분은 “천재 CEO의 성공 비결” 같은 프레임으로 포장되어 있다. 이게 왜 문제냐면,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잡스는 그런 깔끔한 한 줄 요약에 담기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직설적이고, 참을성이 바닥이고, 주변 사람들을 울리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그러면서도 결국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이 모순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라고 느꼈다.

애플의 역사를 한눈에 훑다

1955년 출생부터 2011년 타계까지, 잡스의 56년을 따라가다 보면 지난 반세기 동안 기술이 얼마나 뒤집어졌는지 체감하게 된다.

책을 읽으며 주요 사건을 정리해봤다. 이걸 쭉 나열해놓고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이라기보다 하나의 산업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연도 주요 사건
1955 스티브 잡스 출생, 폴·클라라 잡스에게 입양
1977 애플 II 출시 / 애플 컴퓨터 주식회사 공식 출범
1984 매킨토시 출시 (엔드 투 엔드 철학의 시작)
1985 애플에서 축출, 넥스트(NeXT) 설립
1995 픽사 토이 스토리 개봉
1997 애플 복귀
2001 아이팟 출시 — “주머니 속의 1000곡”
2007 아이폰 출시
2010 아이패드 출시
2011. 10. 5. 타계 (향년 56세)

1977년에 2,500대 팔리던 애플 II가 4년 뒤인 1981년에는 21만 대가 팔렸다. 이 숫자의 변화만 봐도 당시 개인용 컴퓨터 시장이 얼마나 폭발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게 잡스 혼자 힘으로 이뤄진 건 아니다. 다만, 그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의 모습이 꽤 달랐을 거라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현실 왜곡장 — 잡스의 가장 논쟁적인 능력

책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현실 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이다.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걸 밀어붙여 결국 해내게 만드는 잡스만의 방식인데, 이걸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는 읽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아이폰에 고릴라 글라스를 적용하는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코닝글라스 CEO 웬델 윅스에게 6개월 안에 대량 생산을 요구했고, 윅스가 불가능하다고 하자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아뇨. 당신은 할 수 있어요. 명심해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 (p.883) 그리고 실제로 코닝은 해냈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대단하다는 것, 그리고 저 말을 듣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것.

아 근데 이건 좀 다른 얘긴데, 인터넷에서 잡스의 현실 왜곡장을 “리더십의 핵심”이라면서 무조건 긍정적으로 소개하는 글이 꽤 많다. 여기서 한 번 생각해볼 게 있다. 이 방식이 통한 건 잡스가 이끄는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걸 아무 맥락 없이 따라 하면 그건 그냥 갑질이 될 수 있다. 책도 이 점을 숨기지 않는다. 잡스의 현실 왜곡장 때문에 떠난 사람도, 번아웃에 빠진 사람도 적지 않았다.

비범함의 뒷면 — 암 투병과 고집

제품을 만들 때의 완벽주의가 건강 문제 앞에서도 그대로 작동했다는 게, 이 책에서 가장 씁쓸한 부분이었다.

2003년 췌장암 진단을 받은 뒤, 잡스는 초기에 수술 대신 채식과 대체요법을 선택했다. 어린 시절부터 유지해 온 극단적인 식습관에 대한 고집이 여기서도 드러난 셈이다. 주변에서 아무리 수술을 권해도 9개월간 거부했다는 대목을 읽을 때,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당신이 이 부분을 읽는다면 아마 비슷한 감정을 느낄 거다.

투병 중에도 산소 마스크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여러 개를 골라서 착용했다는 일화는, 웃어야 할지 안타까워해야 할지 모를 장면이다. 책의 끝자락에 나오는 한 문장이 이 사람을 가장 잘 요약해주는 것 같다. “비범한 재능을 타고난 많은 위인들이 그렇듯이, 그도 모든 영역에서 비범하진 않아요.” (p.1005) 비범하다는 건, 뒤집어 말하면 보통 사람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떠오른 한 권

잡스의 집착에 가까운 몰입을 보면서, 예전에 읽었던 사이먼 배런코언의 『패턴 시커』가 겹쳐 보였다.

『패턴 시커』는 자폐 스펙트럼의 특성 — 특정 분야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시스템화 경향 — 이 실은 인류 문명의 핵심 엔진이었다는 이야기를 다룬다. 우리가 보통 “비정상”이라고 부르는 특성이, 맥락이 맞으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는 역설. 잡스가 정확히 그 사례인지는 이 책만으로 확답을 드리기 어렵다. 다만 925페이지를 다 읽고 나면, 그의 비범함과 결함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인상은 분명히 받게 된다.

세상은 한 사람에게 모든 걸 다 주지 않는 것 같다. 만약 잡스가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AI 시대의 애플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런 가정에 정답은 없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다.

책에서 밑줄 친 문장들

두꺼운 책일수록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어야 다 읽은 보람이 있다. 몇 개만 골라봤다.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 (p.161) — 애플 제품 철학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말이다. “사람들은 표지를 보고 책을 판단한다.” (p.416) — 디자인에 집착한 이유를 이보다 직관적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만큼 미친 자들… 바로 그들이 실제로 세상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p.1059) — 유명한 ‘Think Different’ 캠페인의 정수가 담긴 문장인데,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 이 문장을 다시 보면 무게감이 다르다.

925페이지를 넘기고 나서

두께만 보면 부담스러운 스티브 잡스 전기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따라가는 과정 자체가 소설처럼 읽힌다. 2주 정도 걸려서 다 읽었는데, 중간에 놓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잡스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이 책은 감정적 판단을 내리기 전에 충분한 맥락을 깔아준다. 그게 좋은 전기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꽤 지난 책이긴 하다. 2011년 출간이니까. 다만 기술 업계의 역사를 이해하고 싶거나, “비범한 사람은 실제로 어떤 모습인가”라는 질문에 관심이 있다면, 지금 읽어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당신이 요즘 읽을 책을 고르고 있다면, 목록에 한 번 올려놓고 고민해보시길.

자주 묻는 질문(FAQ) ❓

스티브 잡스 전기, 분량이 부담스러운데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요?

925페이지라는 숫자에 비해 체감 분량은 훨씬 가볍다. 아이작슨의 문체가 소설처럼 장면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지루한 구간이 거의 없다. 하루에 50페이지씩 읽으면 3주 안에 충분히 끝낼 수 있고, 잡스의 인생 자체가 드라마틱해서 중간에 놓기 어렵다.

초판과 보급판(10주기 증보판)의 차이가 있나요?

2021년 잡스 사망 10주기를 맞아 월터 아이작슨이 후기를 추가한 증보 보급판이 나왔다. 본문 내용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잡스 이후 애플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한 저자의 시선이 담겨 있어서, 가능하면 보급판을 추천한다.

IT에 관심이 없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나요?

기술적인 내용보다 인간 관계와 의사 결정 과정이 중심이라, IT 배경지식이 없어도 무리 없이 읽힌다. 잡스의 성격, 대인 관계, 갈등 구조가 책의 주된 축이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 드라마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월터 아이작슨의 다른 전기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아이작슨은 아인슈타인, 벤저민 프랭클린, 일론 머스크 등의 전기도 썼는데, 잡스 전기가 가장 날것에 가깝다는 평이 많다. 취재 대상이 생전에 직접 참여하면서도 내용 검열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드문 케이스라서, 다른 전기보다 솔직한 묘사가 많은 편이다.

이 글은 개인적인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책 내용의 해석은 주관적 의견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용된 페이지 번호는 민음사 초판(2011) 기준이며, 판본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보다 정확한 내용은 원서를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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