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제대 후 복학하려던 즈음에 아버지 사업이 망했다. 2학년 1학기까지가 전부였다. 학비가 없었고, 공부에 큰 미련도 없었다. 친구와 폐차 직전의 차를 사서 대구 칠성시장에 천막을 쳤다. 오뎅, 닭 염통꼬치, 국화빵. 엄마에게 오뎅 국물 만드는 법을 배워 그렇게 장사를 시작했다. 그때가 스물 몇 살이었는데, 주위 친구들이 전부 학생이던 시절에 나만 노점에 서 있었다. “학생이 왜 장사를 하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괜히 움츠러들었다. 그 기억을 떠올린 게, 이 책 마흔에 쓰는 자서전을 읽고 나서다.
26년 일하고 나서야 떠오른 질문 하나
자서전이라고 하면 유명인이나 쓰는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 책은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 내 이야기 자체가 이미 자서전이라고.
26년을 직장에서 상품 판매를 하며 살았다. 처음 노점에서 오뎅을 팔던 것부터 시작해서, 결국 마지막까지 내가 한 일은 “내가 고른 물건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이었다. 바나나, 액세서리, 모자, 양말까지 팔아봤고, 제과제빵 학원을 다니며 직접 만든 빵을 다음날 가져다 팔기도 했다. 이 흐름을 처음 쓱 훑어본 게 이 책을 읽은 뒤였다. 그 전엔 그냥 “먹고살려고 했던 것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적어놓고 보니 의외의 패턴이 보이더라. 나는 장사를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했다.
이게 좀 의외였다. 내가 선택한 상품을 소개하고, 공감한 고객이 구매하고, 그 대가로 돈이 들어온다는 구조 자체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는 걸 뒤늦게 인정하게 된 거다. 돈이 없어서 시작한 일이라고만 여겼는데, 26년을 돌아보니 그건 핑계에 가까웠다. 좋아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오래 못 한다. 이 깨달음은 책의 첫 문장과 겹친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깨닫고선 화들짝 놀란다.”
정오가 지나야 오전이 보인다
심리학자 칼 융은 마흔 무렵을 “인생의 정오”라고 불렀다. 80년 인생에서 딱 한가운데.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는 전환점. 이 책도 그 비유를 가져온다. 나는 올해 쉰인데, 정오를 좀 지난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오전을 되돌아보는 타이밍. 근데 문제는, 되돌아보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거다.
40대 중반쯤 한번 그런 시기가 왔었다. 부모님이 눈에 띄게 늙어가시는 게 보이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더 이상 내 말을 곧이곧대로 안 듣는 나이가 됐고, 회사에서 내 위치도 슬슬 애매해지더라. 그때 처음으로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게 정말 내가 원한 삶이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그 질문이 무서운 게, 답이 안 나온다는 거다. 너무 오래 남이 정해준 궤도 위에서 달려왔으니까. 부모님이 원하는 것, 사회가 기대하는 것, 가장으로서 해야 하는 것. 그 사이에서 “나”가 뭘 원했는지는 어딘가에 묻혀 있었다.
유년 시절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나를 좀 더 잘 알게 되고 내일을 설계할 수 있다. — 마흔에 쓰는 자서전
이 문장이 마음에 걸렸던 건, 실제로 그랬기 때문이다. 칠성시장 노점 이야기를 적다 보니, 거기서부터 실마리가 풀렸다. “아, 나는 뭔가를 골라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지금 이렇게 책을 읽고 소개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같은 맥락이다. 좋은 책을 발견하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충동이 먼저 온다. 이게 나라는 사람의 본성 같은 거였는데, 이걸 알아차리기까지 50년이 걸렸다.
자서전은 거창한 게 아니었다
이 책은 자서전 쓰는 기법만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과거와 화해하고, 현재를 직시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인생 중간 점검 프로젝트”에 가깝다.
자서전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있다. 뭔가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나 쓰는 거 아닌가, 하는 느낌.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근데 이 책의 접근은 다르다. “너의 평범한 이야기 자체가 이미 자서전”이라고 말한다. 김구, 안데르센 같은 유명인의 자서전을 소개하면서도 핵심은 “그래서 당신은?”이라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책의 구조가 좀 독특하다. 과거, 현재, 미래 세 개의 축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 파트마다 “읽고, 공감하고, 직접 쓰는” 과정이 반복된다. 그러니까 단순히 읽기만 하는 책이 아니라, 읽으면서 동시에 자기 이야기를 꺼내게 만드는 구조다. 출생과 유년기를 돌아보는 질문에서 시작해서, 실패와 상실의 기억을 건드리고, 마흔 이후의 전환과 미래 설계로 이어진다.
아 근데 이건 좀 다른 얘긴데, 나는 이 책에서 “첫 기억”을 떠올리라는 부분에서 한참을 멈춰 있었다. 내 인생의 가장 오래된 기억이 뭘까. 한참 생각하다가 떠오른 건 의외로 칠성시장이 아니라 어릴 때 아버지 가게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던 장면이었다. 사람들이 뭘 사고 뭘 고르는지 보는 게 재미있었다는 기억. 이게 30년 뒤에 노점상으로 연결되고, 26년 직장 생활로 이어진 거라고 생각하니 좀 묘했다. 이런 연결고리를 스스로 발견하게 만드는 게 자서전 쓰기의 힘이라면, 꽤 강력한 도구다.
40대의 불안은 진짜 “나의” 불안인가
40~50대가 되면 삶에서 큰 변화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부모님의 노화, 자녀의 성장, 사회에서의 역할 변화.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밀려들면 심리적으로 상당한 압박이 된다. 갑자기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의심되기 시작하고, 그 의심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번진다.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닌가.
근데 여기서 한 발 물러서야 할 지점이 있다. 그 걱정이 정말 “나의” 걱정인지. 이게 이 책이 던지는 핵심 질문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곱씹은 부분이다. 40년을 살아오면서 실은 남이 원하는 것을 해온 건 아닐까? 부모가 기대한 길, 사회가 정해놓은 궤도, 가장이라는 역할이 요구하는 것들. 그 안에서 “진짜 내가 원한 것”은 뭐였는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일단 과거를 꺼내 펼쳐봐야 한다. 이 책이 자서전을 권하는 이유가 결국 여기에 있다.
다만 한 가지, 이 책이 좀 가볍게 넘어간다고 느낀 부분도 있다. “나를 알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맞는 말이긴 한데, 현실에서 그 설계가 가능하려면 재정적 안정성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한다. 책에서도 잠깐 언급하긴 하지만, 이 부분이 더 깊었으면 싶었다. 자기 이해가 중요한 건 맞는데,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짜 나를 찾아라”는 말은 좀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이건 이 책만의 문제는 아니고 자기계발서 전반에 해당하는 이야기이긴 하다.
자주 묻는 질문(FAQ) ❓
마흔이 아니라 50대인데 읽어도 괜찮은 책인가요?
나이 제한이 있는 책이 아니다. 제목에 “마흔”이 들어가지만, 핵심은 “살아온 날을 돌아보고 남은 날을 설계하라”는 메시지다. 오히려 50대에 읽으면 돌아볼 재료가 더 많아서 깊이가 달라진다. 30대 후반부터 60대까지, 인생의 중간 지점을 지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읽을 만하다.
글쓰기를 잘 못해도 자서전을 쓸 수 있나요?
이 책은 완성된 자서전을 만드는 게 목표가 아니다. “쓰는 과정” 자체가 목적이라고 보는 게 맞다. 멋진 문장을 쓸 필요가 없다. 기억나는 장면, 감정, 사건을 끄적이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책에서도 테마별로 질문을 던져주니까, 거기에 답하는 식으로 쓰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비슷한 책으로 뭐가 있나요?
제임스 홀리스의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가 좋은 짝이 된다. 융 심리학을 기반으로 중년의 위기를 다루는 책인데, 마흔에 쓰는 자서전이 “실천편”이라면 이쪽은 “이론편”에 가깝다. 두 책을 같이 읽으면 자기 이해의 깊이가 한층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다.
기록이 행동을 지배한다는 말
이 책의 마지막 즈음에 나오는 문장이 있다. “기록이 행동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좀 과한 표현 아닌가 싶었다. 근데 실제로 과거를 짧게나마 적어본 뒤에, 미래를 생각하는 방식이 좀 바뀌었다. 막연히 “남은 인생 어떻게 하지”가 아니라,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이런 방향으로 가면 되겠구나”로 바뀐 거다. 요리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레시피를 짤 수 없듯이, 자기 인생의 레시피를 짜려면 먼저 어떤 재료가 있는지부터 꺼내봐야 한다. 마흔에 쓰는 자서전은 그 꺼내는 작업을 도와주는 책이다. 지금 당신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하겠다면, 한 번 펼쳐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