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넘은 시각에 SNS 피드를 내리고 있었다. 새로운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당기고 있었다. 30분쯤 됐을 때 문득 — 이거 뭐 보고 있는 거지. 재미있지도 않고, 정보가 되지도 않고, 그냥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날 밤 스마트폰을 서랍에 넣고 침대 옆 협탁에 책을 꺼내 놨다. 소셜미디어 대신 잠자리 독서를 시작한 첫날이었다.
스마트폰을 침대 밖으로 꺼내기까지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안 오는 밤이 꽤 오래 이어지고 있었다. 피곤한 건 확실한데, 눈이 감기지 않는 상태. 원인이 뭔지는 알고 있었다.
그 무렵 잠들기 전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이 평균 1시간 반 정도였다. 스스로 측정한 게 아니라, 폰 사용 시간 통계에서 확인한 숫자다. 보고 나서 꽤 불쾌했다. 하루 90분이면 한 달에 45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뭘 봤냐고 하면 — 기억나는 게 거의 없었다. 릴스 몇 개, 누군가의 여행 사진, 논쟁 중인 댓글들. 흘려본 것들이라 머릿속에 남은 게 없었다.
그날 밤 SNS 피드를 내리다 멈춘 건 특별한 결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피로했다. 보는 것 자체가 아니라, 아무것도 안 되는 시간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쌓여서 한계에 온 것 같았다. 서랍에서 몇 달째 안 읽은 소설 한 권을 꺼냈다. 베개 옆에 놓고, 스마트폰 충전기를 방 반대편 콘센트에 꽂았다. 손 닿지 않는 거리.
그날 밤 읽은 페이지는 7쪽이었다. 10분도 안 됐다. 근데 읽다 보니까 눈이 무거워졌다. 스마트폰을 볼 때는 아무리 늦어도 눈이 말똥말똥했는데 — 이 차이가 뭔가 싶었다. 화면에서 나오는 빛의 문제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인 건 뇌가 처리하는 자극의 밀도 차이 같았다. SNS는 계속 새로운 것을 밀어 넣고, 책은 같은 흐름 안에 머물게 한다. 뇌 입장에서 둘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사실 이전에도 해봤다가 접은 적이 있었다
이게 처음 시도가 아니었다. 그보다 약 1년 전, 비슷한 생각으로 책을 사서 침대맡에 뒀던 적이 있다. 그때는 심지어 독서 노트까지 준비했다. 의욕이 과했던 거다. 첫날은 20분 읽었고, 둘째 날도 읽었다. 셋째 날에는 ‘오늘 하루 피곤했으니까 내일부터’가 됐고, 그 내일이 결국 오지 않았다. 한 달 뒤 그 책은 여전히 같은 페이지에 북마크가 꽂혀 있었다.
그때 실패한 이유를 나중에 생각해봤더니, 목표 설정이 문제였다. ‘매일 독서하기’라고 정해놓으면 하루 빠지는 순간 ‘실패’가 된다. 그리고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시작하는 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애매해진다. 아 근데 이건 독서 얘기만이 아닌 것 같은데 — 헬스장을 끊어놓고 일주일에 두 번 가는 게 목표였다가 한 번 빠지면 그냥 안 가게 되는 것도 똑같은 구조다. 완벽하게 지키거나 아예 안 하는 이분법이 습관을 가장 빠르게 망가뜨린다.
두 번째 시도에서 바꾼 건 딱 하나였다. 목표를 ‘매일 독서’에서 ‘책을 베개 옆에 두기’로 낮췄다. 읽든 안 읽든, 책이 거기 있으면 된다. 읽기 싫은 날은 표지만 봐도 된다. 그 기준이 워낙 낮으니 실패할 수가 없었다. 실패 없이 이어지다 보니까, 어느 날부터는 그냥 자연스럽게 폈다.
처음 10분이 제일 어려운 데는 이유가 있다
처음 일주일 동안은 책을 폈다가 5분도 안 돼서 스마트폰이 생각났다. 특별히 볼 게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손이 갔다.
충전기를 방 반대편에 꽂아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 건 그때였다. 폰이 손 닿는 거리에 없으니까 충동이 와도 그냥 지나갔다. 일어나서 가져오기엔 귀찮았다. 귀찮음이 습관을 만드는 데 쓸모 있다는 걸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금단증상이라고 부르기엔 좀 과장된 표현이지만, 뭔가 비어 있는 것 같은 그 감각이 3일 정도 이어졌다. 4일째부터는 그 감각이 많이 옅어졌다.
책 선택도 생각보다 중요했다. 처음에는 ‘읽어야 할 것 같아서’ 집어든 자기계발서가 있었는데, 그게 잘 안 읽혔다. 집중해서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느낌이 드는 책은 잠들기 전에 맞지 않았다. 뇌가 이미 하루 치 과제를 처리하고 쉬려는 상태인데, 거기다 또 과제를 얹는 격이다. 가볍게 흘러들어 오는 소설이나 에세이가 훨씬 잘 맞았다. 이건 취향 문제가 아니라 타이밍의 문제다.
잠자리 독서를 시작하면서 좋다고 느낀 환경 변화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 스마트폰 충전기를 침대에서 2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둔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아야 한다.
- 처음엔 가벼운 소설이나 에세이로 시작한다.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책은 낮에 읽는다.
- 독서등이나 작은 조명을 따로 두면 좋다. 조명이 어두울수록 잠드는 속도가 빨라지는 부수 효과가 있다.
- 읽다 잠들어도 된다. 책을 ‘끝내야 한다’는 압박 없이, 그냥 눈이 감기면 덮으면 된다.
한 달 후, 수치로 확인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한 달쯤 지났을 때 스마트폰 사용 통계를 다시 봤다. 취침 전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평균 11분으로 줄어 있었다. 시작 전 90분 대비 약 88% 감소. 이건 숫자로 나왔으니까 확인이 됐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읽은 책이 세 권이었다. 그 전 반년 동안 읽은 책이 한 권도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꽤 다른 숫자다.
수치로 확인이 안 되는 변화도 있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뇌가 좀 더 가벼운 느낌. 전날 밤에 뭔가를 흘려봤던 기억이 없으니까 그게 찌꺼기처럼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SNS는 계속 무언가를 보여주고, 그것들이 수면 중에도 처리가 덜 된 채로 남아있는 게 아닐까 — 물론 이건 내 느낌이지 근거가 있는 말은 아니다. 확답은 못 한다.
책을 베개 옆에 두기 시작한 뒤 깨달은 건, 잠들기 전 10분의 질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무엇으로 그 시간을 채우냐에 따라, 다음 날 아침이 조금씩 달라졌다.
다만 이 방식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잠들기 전 스마트폰 사용 자체가 이미 충분히 이완 루틴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다만 잠이 잘 안 오거나,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개운하지 않거나, SNS를 보고 나서 묘하게 공허한 느낌이 든다면 — 그 신호는 좀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주 묻는 질문
Q. 잠들기 전 독서가 수면에 실제로 도움이 되나요?
직접 경험으로는 도움이 됐다. 책을 읽다 보면 눈이 자연스럽게 무거워지는 속도가 스마트폰을 볼 때보다 훨씬 빨랐다. 수면 전문가들이 스마트폰 블루라이트가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한다는 점을 자주 언급하는데, 그 부분 외에도 SNS 특유의 단속적인 자극이 뇌를 계속 각성 상태로 유지한다는 게 더 크게 느껴졌다. 다만 개인 차이가 있으니 2주 정도 직접 시도해보는 게 가장 정확하다.
Q. 읽다가 잠들어 버리면 내용을 잊어버리지 않나요?
잊어버린다. 근데 괜찮다. 잠자리 독서의 목적이 내용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 대신 다른 방식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면, 잊어버리는 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음 날 이어 읽으면 문맥이 다시 잡히고, 어차피 소설은 며칠 전 내용도 읽다 보면 돌아온다. 오히려 읽다 잠들면 숙면의 신호라고 보는 편이 낫다.
Q. 전자책 리더기로 읽으면 스마트폰과 비슷한 문제가 생기지 않나요?
전자잉크 방식의 리더기라면 스마트폰보다 훨씬 낫다. 눈의 피로도가 다르고, 무엇보다 알림이 없다. 스마트폰으로 전자책 앱을 쓰는 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책 앱을 열었다가 카카오톡 알림을 보는 순간 이미 스마트폰 타임이 시작된다. 전자책을 쓰고 싶다면 전용 리더기를 따로 두는 게 낫다. 종이책은 그 문제가 없다는 점에서 잠자리용으로는 여전히 제일 단순한 선택이다.
Q. 어떤 종류의 책이 잠자리 독서에 가장 잘 맞나요?
장르보다 밀도의 문제다. 문장 하나하나를 씹어가며 읽어야 하는 책, 개념을 따라가야 하는 책은 잠자리보다 낮 시간에 어울린다. 잠자리엔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면 되는 소설, 짧은 단위로 끊어 읽을 수 있는 에세이나 단편집이 잘 맞았다. 한 챕터가 10~15분 분량으로 끊어지는 구성의 책이면 더 좋다. ‘오늘은 여기까지’가 자연스럽게 정해지니까.
베개 옆의 책 한 권이 남긴 것
스마트폰 대신 책을 베개 옆에 두기 시작한 지 꽤 됐다. 매일 읽는 건 아니다. 읽기 싫은 날도 있고, 너무 피곤해서 그냥 눈을 감는 날도 있다. 완벽하게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걸 처음 실패에서 배웠으니까.
당신도 밤마다 스마트폰을 내리다가 문득 ‘지금 뭐 하고 있지’ 싶은 순간이 온 적이 있다면 — 그날 밤 딱 한 가지만 바꿔봐도 좋다. 충전기 위치. 손 닿지 않는 곳으로. 거창한 계획 없이, 그것만으로 첫날은 충분하다.
잠자리 독서가 삶을 바꾼다는 말은 좀 과장된 것 같아서 쓰지 않겠다. 다만 잠들기 전 10분을 어디에 쓰느냐가, 생각보다 다음 날 아침의 질을 조용히 결정하고 있다는 건 말할 수 있다. 그 10분을 되찾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