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은 훈민정음 반포 580돌이자 한글날 제정 100돌이 되는 해다. 이 타이밍에 김진명 작가가 『세종의 나라』라는 장편 역사소설을 들고 나왔다. 한글 창제라는 주제가 뭐 새삼스러울까 싶었는데, 2권짜리 소설을 이틀 밤 만에 다 읽어버리고 나서 생각이 좀 바뀌었다. 우리가 한글에 대해 아는 건, 알고 보니 결과뿐이었다. 그 과정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한글 창제,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이야기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근데 왜 만들어야 했고, 그게 왜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배경부터 좀 깔아야 이 소설이 왜 그냥 “위인전의 소설 버전”이 아닌지 이해가 된다. 당시 조선은 명나라의 그늘 아래 있었다. 말과 글은 물론이고, 나라 이름까지 중국에 물어서 정할 정도였다. 글자를 읽고 쓸 수 있는 건 전체 인구의 약 4%에 해당하는 양반뿐이었고, 나머지 96%의 백성은 한자를 몰랐다. 김진명 작가가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한 말이 인상 깊다. “96%의 백성에게 문자를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한 것, 그것 자체가 혁명이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장면 하나가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다. 양반 박만배라는 인물이 글 모르는 농민에게 서류를 내밀며 손도장을 찍으라고 요구하는데, 이자를 준다는 ‘이전(利錢)’이 아니라 소유권을 넘기라는 ‘이전(移轉)’이었다는 거다. 같은 발음, 다른 한자. 글자를 모르면 땅을 빼앗기는 세상. 이게 픽션이긴 하지만, 당시 실상을 생각하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소리를 그려라” — 이 한마디의 무게
소설의 중반부를 관통하는 핵심 발상은 “소리를 그린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를, 보이는 글자로 옮긴다는 개념 자체가 당대엔 혁명적이었다.
소설에서 세종은 장영실과 함께 소리를 연구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둘 게 있다. 장영실이 실제로 한글 창제에 참여했다는 역사적 기록은 없다. 작가 본인도 이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고, 이건 소설적 상상력의 영역이다. 다만 세종과 장영실이 수학·과학의 원리에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는 점에 착안해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한글이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가 아니라 과학적 설계의 산물이라는 관점을 소설이 꽤 설득력 있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모든 글자가 단순한 획 하나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고, 그 몇 개의 기본 단위로 세상의 거의 모든 소리를 담아낼 수 있다. 작가의 비유를 빌리면 “가장 단순한 벽돌로 무한한 건물을 짓는 것”과 같다. 이런 구조적 우수성을 소설이라는 서사 안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낸 건, 교과서나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힘이 있다.
역사소설이 재미까지 있으려면
한글 창제의 원리를 소설로 풀면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데, 김진명은 로맨스와 미스터리를 장치로 깔아서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여기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역사소설 중에 “의미는 있는데 읽기가 고되다”는 부류가 꽤 있다. 특히 한글 창제 같은 주제는 자칫하면 국어 수업의 연장이 될 수 있다. 그 점에서 이 소설은 좀 다르다. 세종의 밀명을 받은 금부도사 한석리가 금서 속 진실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라인이 있고, 몰락한 양반가의 규수 권숙현과의 비극적 로맨스가 겹친다. 이 두 줄기가 한글 창제 과정과 교차하면서 페이지가 넘어간다.
아 근데 이건 좀 다른 얘긴데, 김진명 작가가 로맨스를 넣은 건 이번이 처음에 가깝다고 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이후 30년 넘게 주로 정치·역사·민족 서사를 써온 작가인데, 한글 창제의 원리를 소설로 풀기에 딱딱한 면이 있어서 흡입력을 높이는 장치로 도입했다는 거다. 실제로 읽어보면, 이 장치가 꽤 잘 작동한다. 전 2권이 긴 분량인데도 중간에 놓기가 어려웠다.
팩트와 픽션 사이,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역사소설을 읽을 때 늘 따라오는 질문이다. 이 부분은 사실이고, 이 부분은 상상인가. 김진명 작가 본인이 그 기준을 꽤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작가의 원칙은 이렇다. “사회에 대해 메시지를 내고 싶은 주된 주제는 거의 팩트로 받아들이면 되고, 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서 허구를 쓰는 것이다.” 즉, 조선이 명나라에 예속돼 있었던 상황, 백성 대다수가 문맹이었던 현실, 사대부들의 반대라는 장벽 — 이런 큰 틀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한석리와 권숙현 같은 인물, 장영실이 한글 창제를 돕는 설정은 소설적 상상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역사소설 리뷰 중에 팩트와 픽션을 구분 없이 “이런 일이 있었다”고 소개하는 글이 가끔 보인다. 그건 좀 위험하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로, 재미있게 읽되 역사적 사실 자체를 검증하려면 『훈민정음 해례본』이나 『세종실록』 같은 원전 기록을 따로 참고하는 게 맞다. 소설의 가치는 정확한 사실 전달이 아니라, 그 시대의 감정과 맥락을 체험하게 해주는 데 있으니까.
한글의 해에 읽으면 좀 다르게 느껴지는 소설
올해가 한글날 제정 100돌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 소설을 읽으면, “백성이 글을 얻어야 웃음을 얻고 나라도 산다”는 소설 속 문장이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국립한글박물관이 2026년을 ‘한글의 해’로 선포하고 연중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훈민정음 반포 580돌, 한글날 제정 100돌, 한글 점자인 훈맹정음 반포 100돌까지 겹치는 드문 해다. 이런 맥락 위에서 읽는 『세종의 나라』는 단순한 소설 이상의 무게를 갖는다. 지금 이 글을 쓰고,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것 자체가 580년 전 한 사람의 결단에서 시작됐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된다.
소설 속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은 세종이다. 신하들의 거센 반대, 중국의 눈치, 자신의 건강 악화. 그 모든 걸 안고도 끝까지 밀어붙인 과정이 이 소설의 진짜 힘이다. “대단하다”라는 네 글자로는 부족하다는 걸, 읽고 나면 알게 된다. 이건 제가 확답할 수 있다.
| 항목 | 정보 |
|---|---|
| 도서명 | 세종의 나라 (전 2권) |
| 저자 | 김진명 |
| 출판사 | 이타북스 |
| 출간일 | 2026년 3월 |
| 장르 | 역사소설 / 장편소설 |
| 주요 소재 | 한글 창제 과정, 세종대왕, 장영실 |
자주 묻는 질문(FAQ) ❓
『세종의 나라』는 역사책인가요, 소설인가요?
소설이다. 시대적 배경과 한글 창제라는 큰 틀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지만, 주요 등장인물과 세부 스토리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부분이 많다. 장영실이 한글 창제에 참여하는 설정도 소설적 허구라는 걸 작가 본인이 밝히고 있으니, 재미있게 읽되 역사 공부를 대신하는 용도로 보진 않는 게 좋다.
2권인데 분량이 많지 않나요?
분량은 적지 않지만, 읽는 속도가 빠른 편이다. 미스터리와 로맨스 라인이 이야기를 끌고 가기 때문에 중간에 멈추기가 어렵다. 실제로 여러 리뷰에서 “하루 만에 다 읽었다”는 감상이 나올 정도다. 역사소설치고는 진입 장벽이 낮은 편이라 평소 소설을 즐기는 분이라면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다.
김진명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볼 만한가요?
대중성과 역사적 스케일을 좋아한다면 읽어볼 가치가 있다. 1993년 데뷔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이후, 『고구려』, 『글자 전쟁』 등 민족과 역사를 다룬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이번 『세종의 나라』는 3년 만의 신작이다.
청소년이 읽어도 괜찮은 수준인가요?
중학생 이상이라면 충분히 읽을 수 있다. 현재 독서감상문대회도 진행 중이어서(공모기간 3/3~8/31, www.세종의나라.kr) 교육적 활용도 가능하다. 다만 소설이니만큼 한글 창제의 정확한 역사를 알고 싶다면, 소설과 함께 훈민정음 관련 교육 자료를 병행하는 편이 낫다.
본 글은 『세종의 나라』를 읽고 작성한 개인적인 감상과 정보 정리글입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일부 내용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작가의 창작이므로, 한글 창제의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려면 『훈민정음 해례본』, 『세종실록』 등 원전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