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달러 서평 – 탈달러 시대라는데, 왜 달러는 안 무너지나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뚫었다는 뉴스를 보면서 잠깐 멍했다. 불과 몇 년 전, 1,100원대에서 환전하던 감각이 아직 손에 남아 있는데 숫자는 이미 저만치 달아나 있었다. 배당주 투자를 하면서 미국 ETF 쪽으로 자연스럽게 눈이 갔고, 거시경제를 들여다볼수록 하나의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미국 재정적자가 이 지경인데, 달러는 대체 왜 끄떡없는 걸까. 폴 블루스타인의 킹달러는 그 질문에 504쪽짜리 답변을 내놓는 책이다.

달러가 ‘왕’인 진짜 이유는 군사력이 아니다

킹달러의 핵심 논지를 한마디로 줄이면, 달러 패권의 본질은 ‘배관’이라는 거다. 미국 군사력이 아니라, 돈이 흐르는 인프라 자체가 달러로 짜여 있다는 점.

저자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게 CHIPS라는 시스템이다. 청산은행간결제시스템. 이름부터 생소하지만, 국제 달러 거래의 90% 이상이 여기를 통과한다. 신용카드 결제부터 다국적기업의 수십억 달러 송금까지. 이 배관을 대체할 인프라가 아직 지구상에 없다. 브릭스가 탈달러를 외치고, 중국이 CIPS를 만들었지만, SWIFT 데이터 기준 2025년 12월 달러의 글로벌 결제 비중은 50.5%로 오히려 다시 올랐다. 위안화? 같은 시기 약 3% 안팎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제3국 간 거래라는 개념이다. 한국과 일본이 무역할 때 서로 원화나 엔화를 안 쓰고 달러를 쓴다. 미국과 아무 상관없는 거래인데도. 이게 달러 패권의 뿌리다. 유로화는 유럽 내부에서나 힘이 있고, 위안화는 중국과의 양자 무역에서만 제한적으로 쓰인다. 킹달러는 이 구조적 차이를 꽤 집요하게 파고든다.

달러의 무기화 –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일까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 여기다. 달러의 힘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 힘을 무기로 쓰고 싶은 유혹도 커진다는 역설. 미국은 1990년대 마약 카르텔 자금세탁 차단에서 시작해, 9·11 이후 미국애국자법으로 무기를 업그레이드했고, 2022년에는 러시아 외환보유고 3,000억 달러를 동결하는 초강수를 뒀다. 효과는 확실했다. 그런데.

이걸 지켜본 다른 나라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좀 다르다. “우리도 미국이랑 사이가 틀어지면 저렇게 되나?” 이 불안감이 탈달러 움직임의 실질적인 동력이 된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사우디가 위안화 결제를 검토하고, 인도가 루피 결제 채널을 만들려 하고, 각국 중앙은행이 금 매입을 늘리는 흐름. 이게 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가지들이다.

달러는 미국의 법정통화인 동시에 국제통화다. 이 이중 정체성 때문에, 미국이 자국 이익만 좇아 달러를 다루면 국제적 신뢰가 깎인다. 무기가 너무 강력하면 아무도 그 무기 사거리 안에 들어오려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근데 여기서 “그러면 탈달러 금방 되는 거 아니냐?” 싶을 수 있는데,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BRICS Pay의 거래량은 SWIFT의 1%에도 못 미치고, 위안화는 자본 통제라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국제 유가 결제의 85% 이상이 여전히 달러다. 탈달러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인프라의 문제라서, 수십 년 걸릴 일을 수년 안에 해치울 수 없다.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변수 – 달러의 적인가 아군인가

킹달러가 단순한 달러 찬가가 아닌 이유는 이 부분 때문이다. 저자는 스테이블코인을 “달러 패권의 확장이자 동시에 위험 요소”로 본다. 2021년 유통 시가총액이 1,750억 달러를 넘어선 스테이블코인은 대부분 달러에 가치가 고정되어 있다. 얼핏 보면 달러 생태계를 더 넓히는 도구 같다.

문제는 디페깅이다. 고정이 풀리는 사태. 저자는 “스테이블코인의 디페깅은 드물지도, 사소한 일도 아니다”라고 꽤 단호하게 경고한다. 화폐 발행 주체가 파편화되면 관리 감독의 사각지대가 생긴다. 연준이라는 든든한 최종 대부자가 뒤를 받쳐주는 전통 달러와 달리, 스테이블코인은 그 안전망 바깥에 있는 거다. 이건 좀 아니라고 본다. 편리함만 취하고 안전장치는 빠진 구조라서.

아 근데 이건 좀 다른 얘긴데, 스테이블코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문득 떠오른 게 있다. 요리할 때 레시피를 따르는 것과 즉흥으로 하는 것의 차이랄까. 레시피(연준의 통화정책)가 있으면 맛이 일정하다. 그런데 스테이블코인은 누구나 부엌에 들어와서 자기 레시피로 요리하겠다는 것과 비슷하다. 잘 만들면 맛있을 수 있지만, 기본기 없는 사람이 만들면 사고가 난다. 킹달러는 이 부분을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와 대비시키면서 꽤 흥미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연준이라는 존재 – 결국 신뢰의 문제

달러 패권의 세 번째 축은 연준이고, 저자가 말하는 ‘미국의 치명적 실수’도 결국 연준의 독립성이 훼손되는 시나리오와 맞닿아 있다.

2007~2008년 금융위기 때 연준이 한 일이 인상적이다. 미국발 위기였는데, 연준이 전 세계에 달러 유동성을 공급했다. 최종 대부자 역할. 이걸 통해 “위기가 와도 달러는 생명줄”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달러의 유동성, 즉 아무 때나 대량으로 사고팔 수 있다는 특성은 여기서 나온다.

다만 저자가 걱정하는 건 정치 압력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파월 의장에게 금리를 내리라고 압박하는 상황. 연준이 정치권력에 휘둘리면 시장 참여자들이 느끼는 신뢰가 무너진다. 다행히 파월은 1기 때도 압박에 굴하지 않는 선례를 만들었지만, 이건 사람에 의존하는 구조라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ECB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각국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비중은 58%까지 떨어졌다. 10년 전 70%에 비하면 점진적 하락이 진행 중인 건 맞다.

그래서 내 자산은 어떻게 해야 하나

책을 덮고 나서 제일 먼저 한 건, 내 포트폴리오에서 달러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을 다시 계산해본 거였다. 코로나 전 1,12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이 지금 1,500원 안팎을 오간다. 원화만 들고 있었다면 그 차이만큼 구매력이 줄어든 셈이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대략 25~30% 손실에 가깝다. 화면에 뜬 숫자를 보고 잠깐 한숨이 나왔다.

인터넷에서는 “달러 패권 끝났다, 탈달러 시대다”라는 말이 꽤 돌아다닌다. 그런데 킹달러를 읽고 나면, 이게 얼마나 피상적인 주장인지 체감하게 된다. 탈달러가 되려면 배관(CHIPS), 유동성(미국 국채 시장), 감독기관(연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대체해야 한다. 현재 이 조건을 하나라도 갖춘 통화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달러 비중을 줄이겠다는 건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대안이 나온 다음에 할 얘기라고 본다.

다만 확답을 드리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환율이 여기서 더 오를지, 아니면 조정이 올지는 예측의 영역이다. 이 책도 미래를 맞추겠다고 나선 게 아니라, 현재의 구조를 제대로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구조를 알면 뉴스를 볼 때 판단 기준이 생긴다. 그게 이 책의 가치다.

자주 묻는 질문(FAQ) ❓

킹달러는 경제 비전공자도 읽을 수 있는 수준인가요?

솔직히 쉬운 책은 아니다. 504쪽 분량이고 금융 용어가 꽤 나온다. 다만 저자가 40년 경력의 저널리스트라서 서사적으로 풀어가는 힘이 있다. 브레튼우즈부터 스테이블코인까지 역사 순서대로 따라가면 맥락이 잡히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는 걸 권한다.

탈달러화는 실제로 진행되고 있나요?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비중이 58%로 내려온 건 사실이다. 그런데 “비중이 줄었다”와 “패권이 무너진다”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는 걸 구분해야 한다. 국제 결제에서 달러는 2025년 12월 기준 50.5%로 오히려 반등했고, 위안화는 3% 안팎에 머물러 있다. 방향은 분산이지만 속도는 아주 느리다.

개인 투자자가 달러 자산을 보유해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

원화 자산만 보유하면 환율 변동에 그대로 노출된다. 코로나 전후로 원달러 환율이 1,120원에서 1,500원까지 올랐는데, 이 차이가 곧 원화 구매력의 하락이다. 미국 ETF나 달러 예금 등을 통해 통화를 분산시키는 건 수익 추구가 아니라 리스크 관리에 가깝다.

비트코인이나 금이 달러를 대체할 수 있나요?

킹달러의 시각에서 보면 아직은 역부족이다. 화폐로 기능하려면 유동성, 안정성,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감독 기관 세 가지가 필요한데, 비트코인은 변동성이 너무 크고 금은 결제 수단으로 쓰기 어렵다. 자산 분산의 한 축으로는 의미가 있지만, 기축통화를 대체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결국 구조를 아는 사람이 덜 흔들린다

킹달러를 읽기 전과 후의 차이는 뉴스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브릭스가 탈달러를 선언했다”는 기사를 봤을 때, 예전에는 불안해졌을 텐데 지금은 먼저 “그래서 CHIPS를 대체할 인프라는 있나?”를 따진다. 그 질문 하나만 던져도 기사의 절반은 걸러진다. 환율이 오르든 내리든, 달러라는 구조를 이해하는 건 투자 이전에 세계 경제를 읽는 기본 체력 같은 거다. 폴 블루스타인의 킹달러는 그 체력을 만들어주는 책이다.

본 글은 『킹달러』(폴 블루스타인 저, 인플루엔셜 출판)를 읽고 개인적인 감상과 해석을 담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투자 및 자산 배분에 관한 내용은 필자의 주관적 견해이며, 특정 투자를 권유하거나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금융 관련 의사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상황에 맞게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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